오늘날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 성화들을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모습이 대단히 거룩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던 그 당시 사람든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아보았을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문제들을 생각지 않고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안다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근본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아기로 태어나시기 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러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신성 모독죄의 경우 돌로 쳐 죽여도 무방하게 되어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소개하셨는데
하나님을 섬겨 왔던 사람들이 그 분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장막을 쓰고 오시니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그분을 결국 십자가에 처형하고야 말았습니다.
자기들이 섬기던 신을 처형한 이 사건은 그야말로 시대적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건의 발생 배경을 보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관념 속에서의 하나님만 알았지 자행자재하셔서 어떤 모습으로도,
심지어 자기들과 같은 육체의 모습으로도, 심지어 자기들과 같은 육체의 모습으로도 오실 수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영적인 식견과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육체로 오셨을까요?
짧은 이야기 하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육체로 오신 하나님`
한 나그네가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가 길가에서 먹이를 쪼아먹고 있는 새들을 보았습니다.
나그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새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가까이 다가가 머리라도 어루만져 주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가 가까이 다가가자 새들은 푸르르 저만치 날아가 앉았습니다.
나그네의 진슴을 알지 못한 새들은 그가 혹시 자신들을 해지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그네가 몇 차례 다시 다가갔지만 새들은 마찬가지로 달아났습니다.
나그네는 결국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들에게 내마음을 전해 주려면 나 자신이 새가 되어야 하겠구나.'
하나님께서 육체의 옷을 입고 오신 까닭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보면 두려움에 늘 회피하고 달아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주셔야 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시려고 인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출20장13~21절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가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의 엄장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다 보니 두려워 견딜 수 없어서 모세에게 중재를 부택했습니다.
나그네가 새들이 귀여워 쓰다음어 주고 싶어서 다가갔지만 새들은
그 마음을 모르고 그저 두려워 달아났듯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되니 그저 죽을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인간들이 직접 들으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의 위치에 계시고 사람들은 혈육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기만 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요1장1~14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예수님)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근본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신성을 보이실 때는 두려워했지만 실지로 육신을 쓰고 오시니 너무나 경만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종교 지도자라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과 같은 육체의 모습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나사렛이단'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하신 것이 죄가 된다고
하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다 보니 예수님의 입에서
아무리 주옥같은 말씀이 나오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당대 종교 지도잘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살인 강도보다도
더 흉악한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스도를 핍박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해야할 가족들과 친지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막3장 20~21절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이런 장면들이 성경에 왜 기록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널이 알려져 있는 예수님 신성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까지 이해하고 깨달아야만 이 시대 재림하시는
재림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재림예수님께서는 초림때와 동일하게 다시한번 육체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히9장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재림예수님께서는 첫 번째와 동일하게 두번째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항상우리와 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는것은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것,
즉 육체로 오시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셔서 구원에 이르는 방법,
바로 새언약유월절을 통해 죄사함과 영생의 모습으로 우리앞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로 오셔서 자녀들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시고
사랑하시고 함께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재림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한 가지소원, 자녀구하기 위해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바라보시고 예언이 이루어지는것을 목도하셔서
재림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고향에 돌아가는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